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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 이승만-박정희주의의 처절한 몰락 이후 한국 보수는 누굴 숭배할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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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최영태기자 |  2016.12.29 11:47:01

흔히 한국에서 진보니 보수니, 또는 좌파니 우파니 하면서 논란이 일어나지만 대개는 다 헛소리다. 왜냐면 한국에서 “난 보수야” 또는 “넌 좌파지?” 하는 말은, 보수나 좌파라는 말의 엄밀한 의미와는 아무 상관없이 그냥 내 편, 네 편을 가르기 위한 수단이기 때문이다.

예컨대 보수를 ‘국가-공동체를 지키는 것’이라고 규정한다면, 최순실파의 국정농단에 가장 분노해얄 것은 보수주의자다. 국가-예산-공무원이라는 한국의 공동체 시스템 파괴에 거의 성공한 것이 최순실파였기 때문이다. 촛불민심 중 상당수가 스스로를 “1번 찍은 사람이지만 너무 화가 난다”라고 규정하는 데서도 보수주의자의 이런 분노가 읽힌다. 

1번 찍은 사람들은 분노하는데, 1번당 사람들은 별로 분노하지 않는 이유는?

그러나 문제는 정치인들이다. 스스로 보수주의자임을 틈만 나면 표방하는 ‘1번 당’ 사람들 중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에 대해 진정으로 분노한 사람이 얼마나 되는가? 1번 당 사람들의 지난 두 달 간의 행태를 통해 돌아본다면, 이들 중에는 진정으로 분노하는 사람들이 별로 없음을 알 수 있다. 그렇기에 박근혜를 그리 감싸고 돈 사람들이, 지금처럼 자신의 정치적 이득을 계산해가면서 저렇게 다시 친박과 비박으로 나뉘어 당을 나누면서 연명책을 찾는 지금과 같은 행태만을 보이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여기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새누리당을 보수당이라고 하지만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고, 그저 말로만 보수당이며, 실제로는 ‘박근혜 주변에 모인 사람들의 도당 또는 붕당’에 불과하다는 사실이다. 새누리당의 파벌을 친박과 비박으로 나눈다는 데서도 이런 특징을 읽을 수 있다. 주의(-ism)가 없으니 그저 특정인과의 친소관계로 그룹을 나눌 뿐이란 얘기다.

"친박이니 비박이니 해도 '친반'이란 점에선 모두 같아"

최근 라디오 인터뷰에서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가 “친박이니 비박이니들 하면서 반목하지만, 반기문과의 연관성을 보면 모두 ‘친반(친반기문)’이므로 결국 한통속”이라 한 데서도, 새누리당 사람들의 진면목이 읽힌다. 

그나저나, 이렇게 권력 주변에 모인 붕당에 불과했던 새누리당이 그간 당이 추종하는 인물로 내세웠던 것은 단연 박정희 전 대통령이었다. 물론 이승만을 숭상하는 사람들도 있기는 하다. 하지만 이승만 초대 대통령은 결정적 과오(한국전쟁 당시 한강다리 폭파를 앞두고 서울 사람들에게 “가만히 있으라”는 라디오 방송을 해대면서 혼자서만 한강 이남으로 도망간 행동 등)를 통해 이미 역사적으로 과오가 훨씬 많은 인물로 평가가 끝났다. 그렇기에 아무리 이승만 숭배주의자들이 열렬히 활동을 펼쳐도 추종자를 모으는 데 근본적인 한계가 있었다. 

하지만, 박정희는 달랐다. 박정희의 시대의 영광을 재현할 인물로 그의 딸 박근혜를 대통령으로 뽑기까지 했고(2012년 대선), 그에 앞서서는 ‘박정희와 비슷하게 생겼고, 박정희처럼 경제를 살릴 인물’로 이명박 전 대통령을 뽑았으며(2008년 대선), 중국 등 해외에서도 국가경제를 비약적으로 발전시킨 박정희를 높이 평가하는 흐름이 있었다는 점 등에서, 박정희 유신독재에 맞서 민주화 투쟁을 한 사람들도 박정희를 온전히 과실만 있는 사람으로 부정하기에는 힘에 부치는 측면이 분명히 있었다. 

▲더불어민주당 도종환(오른쪽), 유은혜 의원 등이 17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국정 역사교과서 폐지 촉구 서명운동을 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그러나, 그 모든 ‘박정희 신화’ 또는 ‘박정희 주의’는, 그의 딸 박근혜의 완전하고도 철저한 실정(失政)으로 그 추악함을 만천하에 드러냈고, 이제 한국인 중에서는 한 4~5% 정도만이 박정희에 대한 향수와 그리움을 갖게 되는 사태에까지 이른 셈이다. 박정희 시스템의 추악함을, 최순실파는 재벌과의 끈끈한 정경유착, 국가시스템을 유린하면서까지 사익(私益)을 추구하는 작전 등으로 백일하에 드러냈다.

이승만주의는 진즉에 부정됐고, 한국의 이른바 보수 세력들이 엄청난 공력을 들여 완성하려 했던 박정희주의까지 산산이 부서진 지금, 이제 한국의 보수들은 누굴 숭배 대상으로 삼을 것인가? 

시조-종조-숭배인물 없는 정당이 가능한가?

보수주의자이면서도 제대로 된 나라를 세우기 위해 사회주의-공산주의 세력과의 연대도 마다하지 않던 안재홍, 김규식 류의 인물들을 숭배하기에는, 한국인 일반이 그들에 대해 갖는 기억의 양이 너무 적다. 김구라는 훌륭하면서도 한국인의 심성에 쉽게 어필할 수 있는 모델이 있기는 하지만, 이승만주의자들이 김구를 거의 공개처형 한 데다, 김구는 생애 마지막 순간에 분단을 막고 단일민족국가 수립을 위해 김일성과의 대화도 마다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반공을 기반으로 하는 한국의 보수들이 받아들이기에 힘든 인물이다. 

중국-러시아와의 화해라는 ‘북방정책’을 개척해 21세기 한국 경제의 영광을 예비한 노태우 전 대통령을 새로운 숭배 모델로 세우기에는, 노태우의 퇴임 뒤 발각된 ‘4000억 비자금’의 추악한 면모가 방해하고, 또 노 전 대통령의 개인적 카리스마도 약한 편이기에 ‘노태우주의’로 발전시키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게 아마 공론일 것이다. 광주사태라는 현대사의 비극과 함께 하기에 전두환주의는 말할 필요조차 없다. 

사실, ‘돈 잘버는 경제실용주의자’로서 자신을 포장해 대통령에 당선된 전 이명박 대통령이 그처럼 실정만 하지 않았다면, 한국의 보수는 '이명박ism'을 내세울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국가 시스템을 사익 추구 수단으로 사용하는 데 주저함이 없었던’ 이명박의 추악한 면모가 상당 부분 드러났기에 이명박을 상징물로 세우기도 힘들다. 

야권의 튼실한 모델, 김대중주의와 노무현주의

반면, 야당에는 튼실한 모델이 있다. 바로 김대중주의, 노무현주의다. 이들 모델들에도 하자가 없는 건 아니지만, 과(過)보다는 공(功)이 많기에 무리없이 추종자들을 모을 수 있다. 

미국의 공화당은 링컨 전 대통령을, 민주당은 토마스 제퍼슨 전 대통령을 각각 종조(宗祖)로 삼는다. 링컨이든 제퍼슨이든 과가 없는 인물들은 아니지만, 그 공이 훨씬 더 크기에 당의 조상으로 숭상하기에 아쉬움이 없다. 미국의 수도 워싱턴에 있는 개인숭배 기념물 중 가장 그럴싸하게 포장된 것이 링컨과 제퍼슨의 기념관이라는 점을 봐도 이 두 숭배 대상의 위치를 알 수 있다.

한국의 보수는 이제 참 큰일났다. 친박이니 비박이니 하는 개인과의 친소관계가 아니라, 이념적으로 숭상할 상징인물이 없는 정당이란 게 가능한지 참으로 궁금하기 때문이다. 어려움에 처할 때 민주당 계열 인사들은 “김대중주의 또는 노무현주의로 뭉치자”고 호소할 수 있다. 이승만은 진작에, 박정희는 2016년에 파산난 상태에서 한국의 보수들은 도대체 앞으로 “누구를 기리며 뭉치자”고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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