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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타인의 권리 침해하며 내 자유 외치는 게 예술?

베르나르 베르톨루치의 해명을 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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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김연수기자 |  2016.12.07 16:43:00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의 마리아 슈나이더(왼쪽)와 말론 브란도. (사진=유튜브 캡쳐)


최근 이탈리아 영화감독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가 그의 1972년 작품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에서 주연 배우인 마리아 슈나이더와 사전 합의 없이 강간 장면을 찍었다고 알려져 세계적인 논란거리가 되고 있다. 

이 영화의 유명한 장면인 버터를 사용한 정사 장면에 대해 감독이 “그 강간 장면은 배우와 합의되지 않은 것이었다”고 밝힌 2013년의 인터뷰가 올해 11월 23일 유튜브에 공개되면서 큰 파장을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영화를 찍을 당시 19세였던 마리아 슈나이더는 이 장면에 대해 실제 강간을 당하는 기분이었고, 이 영화에서 보인 눈물은 실제로 분해서 흘린 눈물이었다고 밝힌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지난 2011년 암으로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감독과의 화해는 물론 하지 않았고, 비록 신인이었던 그녀의 이름을 알리게 했던 영화였지만, 그녀는 그 영화를 찍은 것에 대해 인생의 수치라고 여겼던 것이다. 

감독의 낯선 여자에 관한 성적인 판타지로부터 시작한 이 영화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는 개봉 직후 뜨거운 논란과 반응을 일으켰고 단숨에 문제작이 됐다. 각종 심리학과 철학으로 해석된 영화는 본능에 탐닉하는 동물에 가까운 인간의 모습을 통해 허위의식을 지적하는 정도로 여겨지는 듯하다. 

논란이 악화되자, 베르톨루치 감독은 6일 버라이어티 쇼에서 “합의가 안됐던 것은 강간 장면이 아니라, 버터의 사용 여부”라며, “나는 슈나이더가 분노와 수치심을 연기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 분노와 수치심을 느끼기를 원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한편, 이 사건을 바라보며, 기자는 동시에 최근 읽었던 그래픽노블 ‘피카소’를 떠올렸다. 스페인 청년 피카소가 파리에 19세에 도착한 순간부터 ‘아비뇽의 처녀들’을 완성하기까지 약 7년 간의 이야기를 영웅적인 모습이 아닌 인간적인 모습으로 그려낸 책이다. 

이 책이 기억에 남았던 이유는 두 가지였다. 하나는 마치 우디 앨런 감독의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의 주인공처럼 피카소가 청년시기를 보낸 파리에 대한 낭만적인 상상이 충족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1900년대의 파리는 예술의 가치가 어느 때보다 존중받은 시기로 알려져 있지만, 그 이면에 가려진 현실은 예술 역시 자본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으며 예술적 취향은 계급의 지표로 존재하기도 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런 현상의 증거는 변함없이 발견할 수 있다. 

이렇게 변하지 않은 현실의 부정적인 이면과 맥락을 같이 하는 또 다른 이유는 피카소의 청년시절이 피카소의 첫사랑이라고 알려진 페르낭드 올리비에의 시점으로 그려지기 때문이다. 올리비에가 피카소와 만나기 이전부터 내레이션과 함께 교차 편집된 그녀의 삶은 자본을 제외하고는 거칠 것 없이 자유로웠던 예술가들뿐 아니라, 그들의 뮤즈이자 모델이었던, 당시 낮은 계급 여성을 대변하고 있다. 

예술가들은 특히 성적으로 문란한 생활을 했고, 한 명 이상의 모델과 동거를 하며 학대를 하거나, 성적 욕구를 풀거나, 복장을 바꾸거나 벗으며, 예술가의 머릿속에 그려진 이상으로서 존재했던 것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예술은 ‘아름다운 것’일 수 있다. 피카소가 청년일 당시의 예술이 그랬을 것이고, 베르톨루치의 영화 역시 아름다운 미감으로도 유명하다. 그의 대표작인 ‘마지막 황제’를 보며, 서구의 시선에서 바라본 동양적 아름다움에 대해 다시 생각했던 기억이 있다. 이렇게 예술의 가치는 곧 미의 가치일 수도 있을 것이다. 예술의 또 다른 모습은 같은 현실을 보는 시각의 제시에 있을 수도 있다. 다른 시각, 기존의 가치관을 전복하는 시도로부터 세상은 변화가 일어나기 마련이니까. 

특히 현대 예술은 다양한 형태와 표현 방식만큼 많은 가치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현대에도 피카소의 시대도, 아마 더 이전의 시대와 비교해도 달라지지 않은 것이 있다면, 예술의 영역에서 여성을 대하는 태도다. 어떤 메시지든 감성이든 간에 예술적 표현을 위해 도구화된 여성은 표현한 예술가의 태도 및 결과물에서 너무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아무리 고귀하고 가치 있는 예술이라 할지라도 희생자를 품고 있는 예술작품에 대해 어떤 판단을 할 수 있을까. 특히, 예술가 스스로 논리를 공고히 하며 존재 가치를 증명해내려는 현대 예술에서 예술가의 이상과 어긋나는 표리부동한 결과물들은 돈과 명예만이 계급과 권력을 형성한다고 보는 어리석은 판단에서 비롯된 듯하다. 허위를 배격하는 또 다른 허위다. 타인의 자유와 권리가 희생된 자유로운 표현이라는 것은 그야말로 어불성설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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