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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텔링] 역대급 기업 청문회 ‘판도라’…슬픈 대한민국 재벌사

전두환에서 최순실까지…정경유착 흑역사 들여다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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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도기천기자 |  2016.12.06 11:32:05

▲6일 오전 국회청문회에 출석한 기업총수들이 증인선서를 하고 있다. 오른쪽부터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회장, 조양호 한진그룹회장, 신동빈 롯데그룹회장,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최태원 SK대표이사, 김승연 한화그룹회장, 구본무 LG 대표이사, 손경식 CJ 회장. (사진=연합뉴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 연루된 기업들에 대한 역대급 국회 청문회가 막을 올리면서, 정권과 재계의 오랜 밀월사(史)가 주목받고 있다. 멀리는 이승만 정권 때부터 가깝게는 한나라당(새누리당의 전신) ‘차떼기’ 사건에 이르기까지 우리 현대사는 온통 정경유착으로 얼룩져 왔다. CNB가 재계의 흑역사를 다시 들춰봤다. (CNB=도기천 기자)
 
재벌총수 9명 ‘청탁 의혹’ 국회청문회
일해재단·차떼기…서글픈 과거 되풀이
대통령제와 오너지배구조, 모두 혁신해야

국회 국정조사 특별위원회(국조특위)는 6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비롯해 구본무 LG그룹 회장,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 최태원 SK 회장, 손경식 CJ 회장,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허창수 GS그룹 회장(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 등 9명의 재벌총수를 국회로 불러 청문회를 열었다.  

7일에는 최순실, 차은택,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 등 국정농단의 핵심인물들은 물론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 이성한 전 미르재단 사무총장 등 사건에 연루된 이들이 줄줄이 불려 나온다. 최순실 씨의 딸 정유라와 조카 장시호, 언니 최순득 등 최씨 친족들도 증인으로 채택된 상황이다.

과거 몇몇 총수가 청문회에 개별적으로 선 적은 있지만 이번처럼 한꺼번에 불려나와 증언하는 건 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국조특위는 이들이 대통령을 만난 직후에 최씨의 미르·K스포츠재단이 거액의 기금을 거둬들인 점에 주목하고 있다. 이 과정에 기업들의 청탁이 있었다면 박 대통령과 총수들에게 제3자 뇌물공여 혐의가 적용된다.   

▲1988년 5공 비리 청문회에서 노무현 당시 민주당 의원이 ‘전두환의 그림자’로 불렸던 장세동 전 안기부장을 추궁하고 있다. (사진= 당시 방송화면캡처)


미르·K스포츠재단, 장세동 데쟈뷰

이번 사태는 권력집단이 재단을 앞세워 기업들로부터 거액의 자금을 모았다는 점에서 과거 일해재단을 빼닮았다. 전두환 전 대통령은 1983년 아웅산 폭발사건으로 순직한 희생자들의 유족에 대한 지원과 장학사업을 벌인다는 명목으로 일해재단을 설립했다. 

현재의 안종범 전 수석과 비슷한 역할을 했던 인물이 당시 대통령 경호실장이던 장세동 씨다. 장씨는 3년간 대기업들로부터 598억원을 걷었다. 

이후 6월 항쟁으로 13대 국회가 여소야대를 이루자 야당은 국정감사권을 발동, 1988년 11월 역사적인 ‘5공 비리 청문회’가 열리게 된다. 

전두환·장세동 등은 당시 청문회에서 “강제성 없이 경제인들 스스로 낸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정주영 당시 현대그룹 회장은 “내라고 하니까 내는 게 마음 편할 것 같아서 냈다”고 폭로했다. 장씨가 강제성을 끝내 부인하자 청문회 마지막 날엔 장씨와 정 회장 간의 대질신문이 벌어지기도 했다. 정 회장 외에도 양정모 국제그룹 회장, 최순영 신동아그룹 회장, 이준용 대림산업 부회장 등이 증인으로 출석했다.
 
당시 청문회를 통해 자금 모금의 강제성은 드러났지만, 돈을 낸 기업들에 대한 대가성 특혜는 끝내 밝히지 못했다. 금융지원·세재혜택 등 여러 의혹이 일었지만 결정적인 증거를 찾지는 못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자서전을 통해 현대건설 사장 시절인 1980년대초 신군부로부터 모진 회유와 협박을 당했다고 밝혔다. 이 전 대통령과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의 생전 모습. (사진=현대그룹, 연합뉴스)


일해재단은 그나마 양반?

일해재단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더 기막힌 일이 있었다. 지난해 2월 출간된 이명박 전 대통령의 회고록 ‘대통령의 시간’을 보면 1979년 12.12쿠데타로 정권을 찬탈한 신군부 세력의 재계 탄압 실상이 적나라하게 묘사돼 있다. 

당시 전두환·노태우 등 신군부는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국보위)를 내세워 산업 전 분야에 걸쳐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했다. 그들은 ‘중화학공업 투자 조정’이라는 명목 하에 주요 그룹의 계열사 166개를 4년 내에 통폐합하기로 했다. 말이 투자조정이지 강제로 민간 기업을 빼앗아 공사화 하려는 시도였다. 

재계는 시장 논리에 어긋난다며 반발했지만 오래 버티진 못했다. 대표적인 경제단체인 대한상의, 무역협회, 중소기업중앙회장이 신군부의 입맛에 따라 고분고분한 사람들로 교체됐다. 

전국경제인총연합회(전경련) 회장이었던 정주영은 현대자동차를 지키기 위해 당시 현대건설 사장인 이명박을 보안사에 출두시켰다. 보안사는 현대그룹이 자동차를 포기하라고 종용했다. 

이명박 사장은 보안사에 세 차례나 불려 다니며 온갖 회유와 협박을 받았다. 네 번째 보안사에 불려갈 때 정 회장은 도장을 내줬다. 하지만 이 사장은 완강히 버텼고 끝내 전두환 정권은 결국 현대의 자동차사업을 가져가지 못했다. 

현대그룹은 살아남았지만 신군부에 밉보여 회사가 하루아침에 사라진 경우도 있었다. 1985년 재계 서열 7위인 국제그룹은 부실기업 정리라는 명목 하에 전두환 정권에 의해 해체됐다. 당시 재계에서는 ‘총선 때 국제그룹의 협조가 부족했다’ ‘전두환 대통령이 주최한 만찬에 회장이 늦게 참석했다’는 등의 얘기가 돌았다. 

그 시절 많은 기업들이 사라졌지만 반대로 살아남은 기업들은 정치권과 공생하며 호사를 누렸다. 

선경그룹(SK그룹의 전신)은 80년대 초 대한석유공사를 인수한데 이어 1994년 한국이동통신을 인수하는 데 성공한다. 국가기간산업인 석유와 통신이 민영화되었다는 점에서 특혜 논란이 일었지만 SK는 이를 발판으로 재계 3위 그룹으로 성장했다. 최태원 SK회장은 노태우 전 대통령의 사위이기도 하다.     

▲전두환 전 대통령은 일해재단을 만들어 대기업들로부터 598억원을 걷었다. 장세동 전 안기부장이 1995년에 펴낸 책 ‘일해재단’에 구체적인 내용이 기록돼 있다. (사진=CNB포토뱅크)


사과박스→차떼기로 진화 

민주화가 된 이후에도 재계와 정치권의 밀월은 계속돼 왔다. 이른바 ‘차떼기 사건’으로 불렸던 2002년 대선자금 스캔들이 대표적이다. 

당시 대검찰청 중앙수사부는 대선 기간 한나라당(새누리당의 전신)이 삼성, 현대, LG, 한화 등 대기업으로부터 불법으로 정치자금 823억원을 받았다고 발표했다.

17대 총선을 목전에 두고 수사결과가 발표되면서 한나라당은 최대 위기에 직면한다. 하지만 당시 박근혜 대표는 ‘천막당사’를 차리는 등 배수의 진을 치고 121석을 얻어내 정치적 입지를 다지는 계기를 만들기도 했다.

그 시절 한나라당이 창시한 ‘차떼기’라는 자금 전달방법은 한동안 국민들에게 분노와 함께 씁쓸한 웃음을 안겼다. 차떼기는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1만원권 현금 다발을 가득 실은 트럭을 자동차째로 넘겨받는 수법이었다. 

이는 김영삼 정부가 1993년부터 금융실명제를 실시하면서 더 이상 차명계좌 송금이 어려워졌기 때문 에 등장했다. 그전까지만 해도 가명, 차명, 무기명계좌를 이용한 송금이 주를 이뤘다. 이후부터는 거금의 사과박스 전달 방식이 유행처럼 번졌고 급기야 차떼기로 진화한 것이다.   

▲6일 국회청문회에 출석한 9명의 기업총수들. (왼쪽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최태원 SK 회장,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 구본무 LG그룹 회장,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손경식 CJ 회장,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허창수 GS그룹 회장(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후진적 재벌 문화, 이번 사태 원인”

차떼기 사건으로 2004년 정치자금법이 개정되면서 기업들을 상대로 노골적으로 강제 모금을 하던 관행은 사라졌다. 하지만 기부금 등의 명목으로 돈을 걷거나 자발성으로 포장한 변형된 형태의 정치 모금이 또 다른 관행으로 자리 잡았다.

이번 박근혜 대통령과 최순실 일당의 기업 모금은 사익을 추구한 것이라 불법 정치자금보다 더 공분을 샀다. 이미 검찰 수사를 통해 모금의 강제성은 입증된 상태며, 특검은 기업들이 특혜를 받았는지를 추가로 수사 중이다.     

기업과 정권의 유착고리를 끊어내기 위해서는 제도적인 방지책 도입이 뒷받침되어야 할 뿐만 아니라 근본적으로는 정부 권한을 분산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정치권에서는 대통령의 막강한 권한 때문에 기업들이 정부의 요구를 무조건 따를 수밖에 없는 구조가 형성돼 있다는 이유에서 내각책임제로의 개헌이 논의되고 있다.  

대중문화평론가 구병두 교수(서경대)는 “세무조사와 기업인 사면 등 정부가 가진 권한이 너무 크기 때문에 기업들은 정부에 잘못 찍히면 손해가 크다고 생각해 계속 돈을 낼 수밖에 없는 것”이라며 “대통령 중심의 권력을 분산하는 쪽으로 법적·제도적 개혁이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지배구조 개선과 의사결정 투명화 등 상법 개정이 선행돼야 한다는 목소리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한국재벌사>의 저자 이한구 교수(수원대)는 CNB에 “오너 일가가 회사를 지배하고 있는 우리나라만의 후진적인 재벌 문화가 이번 사태의 뿌리”라며 “이사 선임의 투명성 강화, 사업비 외 출연금에 대한 즉시 공시제도 도입, 주주권 강화 등 오너일가의 움직임을 제대로 감시할 수 있는 제도 마련이 급하다”고 말했다. 

(CNB=도기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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