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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박근혜 대통령 전상서

“저는 당신이 정말 생각이란 걸 깊게 해봤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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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김금영기자⁄ 2016.11.28 11:50:09

▲촛불 집회에 모인 국민들이 촛불을 환하게 밝히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일단 글을 쓰기 전 헷갈리는 게 두 가지가 있습니다. 제목의 ‘전상서’가 맞는지 모르겠습니다. 전상서는 웃어른에게 올리는 글인데, 요즘의 돌아가는 세태를 보면 저는 당신이 정말 국민을 대표하기 위해, 모범이 되기 위해 서 있는 웃어른인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어쨌든 저보다 나이가 많고 직책은 대통령이니 전상서라고 글을 적습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있습니다. 당신이 이 글을 읽을지 모르겠습니다. 아니, 하물며 하루가 멀다 하고 쏟아지는 기사는 물론, 매일 꽁꽁 얼은 추위 속에 촛불을 들고 모인 국민들의 목소리를 읽고, 듣고는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어쨌든 기자수첩이라는 명목 하에 당신에게 편지를 쓰고 싶었습니다. 버릇없어 보이나요? 제가 그런 소리를 좀 많이 듣긴 합니다. 그래도 저도 대한민국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며 살고 싶습니다.


당신은 대단합니다. 저는 소위 아주 먼 옛날부터 역사의 흐름 속 기득권 세력이 좋아한다는 사회, 정치에 무식하고 무관심한 젊은이입니다. 대학생 때 시위, 집회에 간 적은 있습니다. 그런데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그저 좋아하고 친한 선배들이 가자고 해서 따라갔을 뿐, 제가 갔던 시위와 집회가 무엇이었는지는 아직도 기억하지 못합니다.


저는 정치, 사회 뉴스를 전혀 보지 않았고, 국회의원들의 이름조차 잘 몰랐습니다. 저는 그냥, 앞선 세대를 원망하는, 그래서 나라 돌아가는 세태에서 고개를 돌려버린 젊은이였습니다. 그저 제 하루 밥벌이가 가장 중요했고, 앞선 세대들이 젊은이들에게 힘든 국가를 물려줬다며 투덜투덜 댔습니다. 나라의 발전이고 뭐고, 그저 저나 잘 사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에 관심을 두지 않았습니다.


보이는 그대로만 보고 기사를 써댔습니다. 겉으로 봤을 때 휘황찬란하고 좋아 보이는 것들이 많습니다. 그 속을 보지 못하고 그냥 밥벌이의 개념으로, 조회수와 기사 개수 채우기를 위해 글을 썼습니다. 지금 돌아보면 부끄러운 글들이 많네요.


아, 말이 길어졌습니다. 저는 당신을 대단하다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당신은 이토록 자기 자신 이외에 관심이 없고 돌아볼 줄도 모르는 사람이 인생 최초로 사회, 정치 뉴스를 찾아보고, 자발적으로 집회에 가도록 만들어 줬습니다. 첫 집회 때 대학로와 광화문을 갔었는데, 거기에서 모교의 후배들이 열띤 목소리를 내고 있었습니다. 부끄러웠습니다. 저는 앞선 세대를 원망하고 살았는데, 그렇게 원망만 하면서 결국 저 또한 아무 것도 하지 않은 채 절망적인 현실을 뒤에 따라오는 세대에 넘겨주고 있지는 않은가 싶었거든요.


또 대구 여고생의 자유발언을 보고도 부끄러웠습니다. 저보다 한참 나이가 어린, 입시에 한창일 그 여고생은 책상 앞에 앉아 있기를 뿌리치고 국민으로서 나라를 위해 쓴 소리를 했습니다. 수능이 끝나고는 더 많은 학생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습니다. 또 부모들은 어린 아이들과 함께 촛불을 들었습니다. 그렇게 길게 살지는 않았지만, 제 인생 처음 보는 광경입니다. 과거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로 국민들 가슴 속에 남은 유관순 열사의 나이는 고작 열여덟이었다고 하죠. 지금의 학생들, 젊은이들 또한 나라가 흔들리고 있다는 것을 압니다.


어린 친구들뿐만이 아닙니다. 거동이 불편한 할머니, 할아버지들도 추운 날씨에 나와서 촛불을 들었습니다. 성별, 연령에 관계없이 많은 국민들이 모여서 하나가 돼 목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목소리가 당신에게는 들리지 않나 봅니다. 오히려 유행어를 만들어 줬습니다. “내가 이러려고 대통령을 했나 자괴감이 든다.” 당신이 국민에게 들려줬던 그 대답에 국민들은 “내가 이러려고 대한민국 국민으로 태어났나” 자괴감이 듭니다.


당신은 또 외로웠다고 합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제18대 대통령선거 때 당신은 당신이 받았던 표들을 기억합니까? 그게 단순 종이로 만들어진 표였습니까? 그 표는 당신에게 믿음을 실은 국민들의 마음이었습니다. 그 많은 표와 마음을 받고도 당신은 외로웠습니까? 그 마음을 애초에 받기는 했습니까? 그 마음을 돌아보기는 했습니까? 소중히 여겼습니까?


“자괴감이 든다” 이후엔 묵묵부답입니다. 저는 어릴 때 “잘못을 했으면 잘못했다고 용서를 빌어야 한다”고 배웠습니다. 유치원에서 친구들이랑 싸웠을 때도 사과했고, 제 할 일을 다 하지 못했을 때도 부모님께 용서를 빌었습니다. 지금은 잘 그러지 못하고 있지만, 그래도 노력합니다.


당신은 아무 것도 몰랐다고 이야기할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 자체가 국민에게 용서를 빌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당신이 서 있는 자리는 그냥 만들어진 것이 아닙니다. 국민들의 마음이 모아 만들어진 자리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많은 일들이 터져 나오는데, 본인은 몰랐고 다 주위에서 벌어진 일이라고만 하면 끝일까요? 그 많은 일들을 몰랐다는 것 자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요? 그리고 정말 몰랐나요? 잘못한 사람들은 없다는데, 또는 몰랐다는데, 또는 저 사람이 시켜서 했을 뿐이라는데 식으로 아니 땐 굴뚝에 연기가 정말 하염없이 풀풀 나네요.


이 가운데 어떤 발언을 하면 파장이 커질까봐 정치적 전략으로 입을 닫고 있나요? 만약 그렇다면 저는 당신이 부끄러운 줄 알았으면 합니다. 이 순간에 머리를 굴리는 게 아니라, 진심을 다한 사과를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벌어진 일에 대한 책임을 마땅히 져야 합니다. 당신은 역사에 어떤 대통령으로 남을 거라 생각하나요? 저는 당신이 정말 생각을 깊게 해봤으면 좋겠습니다. 주변의 친한 사람들 이야기만 듣지 말고요.


사과를 하기엔 자존심이 상하나요? 한 나라의 대통령이라는 직책에 대한 품위를 지켜줘야 하나요? 마냥 억울하나요? 착각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그 자리는 국민을 밟고 위에 서 있는 자리가 아닙니다. 오히려 국민을 굽어 살피고, 겸손해야 하며, 국민의 목소리를 누구보다 경청해야 하는 자리입니다. 당신이 그 자리에 올라간 것이 아니라, 국민의 마음이 모여 당신을 그 자리에 올려주었었습니다. 그것을 잊었다는 게 당신의 가장 큰 잘못입니다. 이제는 당신이 책임을 질 때입니다. 그리고 이건 당신을 둘러싼, 지금 이 순간에도 국민을 위한 마음이 아닌 자신의 위치를 위해 머리를 굴리고 있는 그 많은 사람들에게도 하고 싶은 말입니다.


오늘(28일) 오후에 입장을 밝힌다고 하는데 이번엔 '자괴감'이 아닌 어떤 말을 할지 국민들이 지켜보고 있습니다.


대구 여고생이 자유 발언 때 “국민들은 어리광 공주의 투정을 받아주는 개돼지가 아니다”고 했습니다. 국민들은 개돼지가 아니라 인간, 대한민국의 진정한 권리를 가진 국민이고 싶습니다. 왜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걸 두려워해야 하는 세상이 돼야 하나요? 그리고 이젠 국민들은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정신 차리세요. 아주 똑바로 차려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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