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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권력과 갑질 앞에서의 내 침묵으로 ‘교복부대'는 떨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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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선명규기자⁄ 2016.11.10 15:58:11

▲지난 5일 열린 광화문 촐불집회에서 박근혜 대통령 하야를 촉구하는 '교복부대' 모습. (사진=연합뉴스)

피부에 닿는 공기가 부쩍 차가워진 요즘이다. 날씨 탓도 있겠지만 연일 쏟아지는 ‘그녀들’의  오컬트적 스토리에서 오는 한기일 수도 있겠다. 지난 5일 열린 광화문 촛불집회에는 주최측 추산 20만 시민이 참여했다. 여기에는 이제 막 장롱에서 꺼냈을 동절기 교복을 입고 나온 중고생들의 모습도 보였다. 어른들의 모습에 오죽 실망했으면 이 추위에 거리로 나왔을까. 그들보다 앞서 이 사회에서 살아왔다는 이유만으로 미안하고 부끄러웠다.

사실 ‘교복부대’를 보며 부끄러워진 이유는 명확했다. 기성세대가 만들어 놓은 부당한 구조에 절망하면서도 시정을 요구하지 못해 대물림 되는 것을 방관했던 기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불합격’. 대학 졸업식이 끝나고도 이어진 언론사 도전기는 좀처럼 막을 내릴 줄 몰랐다. 앞으로 세 번만 더 떨어지면 그만 접겠노라 다짐했고, 한 언론사의 최종면접에서 낙방하며 그 기준이 충족됐다. 그래도 먹고는 살아야 했기에 시작한 일이 텔레마케팅이 결합된 카드영업이었다. 문과 출신에 기술도 없던 내가 당장 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일이었다. 

최종면접에서 그 사업의 총괄 책임자인 본부장은 사교성만 있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라 했고, 실적에 따라 인센티브도 두둑이 주겠다고 했다. 계속된 낙방 소식에 자존감이 바닥을 칠 당시, 사교성이라도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본부장의 말대로 일은 단순했다. 특정 규모 이상의 기업 또는 단체에 전화를 걸어 해당 카드의 유용함을 설명하고 얘기가 잘 풀리면 직접 만나 계약서에 도장을 받아냈다. 적성에 꼭 맞았을까. 수습딱지를 떼고 한 달 만에 월간 실적 ‘탑’에 올랐다.

‘밤’의 일이 시작된 건 ‘낮’의 일에 성과가 나던 그 무렵이었다. 당시 본부장은 카드사업과는 별개로 요식업을 구상 중이었고, 곧 서울 명동에 1호 매장을 내기 위한 행동에 돌입했다. 평소라면 퇴근했을 저녁 7시, 나와 몇몇 직원들은 사무실에서 나와 공사현장에 투입되기 시작했다. 가구나 인테리어 자재를 운반하는 것부터 인부들을 도와 톱질, 대패질까지 했다. 이 노동은 대중교통이 끊기기 직전까지 계속됐다. 노동의 대가는 당연히(?) 없었다. 영업사원에 걸맞게 새로 산 정장에 타이까지 말끔히 메고 아침 현관문을 나선 아들이 저녁이면 먼지를 뒤집어쓰고 들어오는 까닭을 부모님은 알지 못했다.

아무리 사회에 첫 발을 내디딘 햇병아리라지만 이 상황의 부당함을 모를 리 없었다. 다만 상명하복 문화에 짓눌려 삭일 뿐이었다. 조직의 분위기를 흐린다는 이유로, 지금까지 만들어 놓은 체계를 무너뜨린다는 이유로, 나는 이미 ‘윗분’ 말씀이라면 무조건 따라야 한다는 문화에 길들여져 있었다. 그게 조직 내에서 나의 안위를 지키는 일이기도 했다. 그래도 얘기했어야 했다. 부당하다고. 잘못됐다고.

나는 그해 겨울, 매장이 완공되고 성업을 이루는 걸 보고 나서야 퇴사했다. 틈틈이 준비한 끝에 한 언론사에서 기자로 일할 기회를 얻었기 때문이었다. 어쩌면 천직이었을 영업직은 그렇게 멀어졌다. 시간이 흘러 나보다 1년 더 그 회사에 다닌 동기에게 들을 수 있었다. 2호·3호 매장을 열 때마다 그 일은 계속됐다고. 그래서 우리 같은 많은 후배들이 힘들어 했다고. 많은 생각이 들었다. 용기를 내서 시정을 요구했다면, 내 선에서 끝나지 않았을까. 항명으로 내쳐졌을 수도 있지만, 그럼에도 ‘부당하다’고 말했어야 했다는 후회가 밀려왔다.  

지금의 ‘비선실세’ 사태를 보면서 여러 이유로 입을 닫았을 대통령 주변인물들이 떠올랐다. 상명하복 문화에서 감히 대통령께 직언하기란 쉽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침묵은 금’이라는 미덕에 지나치게 충실했고, 상황이 이 지경에 이르는 데 한 몫 했다.

지난 주말 광화문에 나온 아이들을 보다 명동 공사장의 차가운 공기가 떠올라 오한이 났다. 나의 침묵으로 부당한 노동을 해야 했을 후배들을 생각하니 이내 마음이 아렸다. 그리고 생각했다. 나같이 비겁하지 않고, 용기 있게 옳은 말을 하는 어른들이 많았더라면, 이 아이들은 지금 따뜻한 교실에 있지 않았을까. 지독히도 비현실적인 ‘순실의 시대’에 이런 몽상을 하며 애써 온기를 끌어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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