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홍철 의원(새정치민주연합)은 육군 법무관 출신이다. 군에서 23년간 근무하고 준장(국방부 고등군사법원장)으로 예편했다. 육군본부 검찰부장(중령) 시절인 1998년, 대표적 군 의문사 사건인 김훈 중위 사건을 수사한 바 있다. 예편 후 변호사로 활동하다 2012년 19대 총선을 통해 국회에 입성했다. 판·검사, 변호사, 장군과 국회의원까지 남들은 하나도 하기 힘든 직업을 두루 경험한 이력을 갖고 있다.
탄탄대로만 걸어왔을 것 같지만 사실 그는 가난한 고학생이었다. 어려운 가정형편을 딛고 오늘에 이르렀다. 민 의원은 지난 7일 CNB와 만나 “나는 노력형”이라며 과거사를 허심탄회하게 밝혔다. 선거제도에 관해서는 “정당 기호를 없애야 한다”는 파격적인 주장도 내놨다.
▲7일 CNB와 인터뷰 하고 있는 민홍철 의원.
권역별 비례대표제 도입…지역주의 청산해야
“친노·비노 계파 갈등 우려 수준” 힘 합쳐야
불우한 환경속 가난한 고학생 “평생 노력형”
- 부산대 법대에서 장학금을 받으며 학교를 다녔다. 공부 잘한 비결이 있나. “머리가 좋은 건 아니고(웃음). 노력형이다. 어렸을 때 워낙 가난해서 공부 외에 다른 것을 할 수가 없었다. 부모가 돈이 많아서 사업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고. 오로지 공부로 승부를 걸어야 했다. 우리 때만 해도 참고서가 많지 않았다. 동아·표준전과, 성문기본영어 정도가 전부였다. 과외공부도 흔치 않았고. 부산에 있는 영어학원에 딱 한 달 다녀본 게 전부다. 지금처럼 참고서가 많이 나오는 환경에서 나같이 가난한 학생들은 공부하기 힘들었을 거다. 그 때는 노력하면 잘 할 수 있는 환경이었다.”
- 군 법무관에 합격해서 장군까지 지낸 이력이 남다르다.
“난 80학번이다. 졸업할 쯤 경기가 좋았다. 공부만 잘하면 대기업에 취직하기가 쉬웠으니까. 대기업에서 추천서가 왔을 때 집어넣으면 거의 합격했다. 나는 학점도 좋았다. 그런데 그 때는 군대 갔다 온 사람을 뽑았다. 난 아직 가지 않은 상태였다. 게다가 계속 법조인의 꿈을 키워왔다. 결국 대학을 졸업하고 남들이 안 가는 길을 갔다. 군대도 해결하고 법조인도 할 수 있는 것이 군 법무관이었다. 군에서 판사, 검사를 다 해 봤다. 꿈 꿔 온 모든 것을 충족한 셈이다. 25년 가까이 군 생활을 했고 장군으로 정년퇴직했다. 최연소 장군이었다. 나는 노력형이라 하고 싶은 것을 목표로 삼아서 준비했다. 되돌아보면 운이 좋았다. 운전면허증 딸 때 한 번 실패했다.”
- 어려운 환경이라 공부만 하기는 쉽지 않았을 텐데.
“우리 나이 또래는 다 어려웠다. 나도 굉장히 어렵게 컸다. 방 한 칸에 일곱 식구가 산 적도 있다. 다섯 형제가 모두 힘들게 지냈다. 사글세 받으러 온 집주인이 아이들한테 뭐라고 한 기억도 난다. 힘든 상황이었지만 긍정적으로 살았다. 나는 사실 김해지역 사회가 돌봐준 거다. 중학교 때부터 독지가들이 많이 도와줬다. 양부모처럼 도와준 분들이 계시다. 그래서 더 밝게 지내려고 했고, 최소한의 도움만 받기 위해 더 열심히 공부했다. 내가 도움 받은 것처럼 지역사회에 계속 은혜를 갚을 계획이다.”
- 세상을 긍정적으로 본다는 건 좋은 일이다.
“지난 총선 때도 갑작스럽게 정치권에 들어왔다. 대부분 사람들은 민홍철이 바로 출마해서 되겠느냐고 했다.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졌다. 남들이 볼 때는 느긋하고 대책 없어 보였을 거다. 결국은 성공했다. 조직생활도 긍정적으로 했다. 군대 있을 때 절대 공적인 자리에서 아랫사람을 나무라지 않았다. 사적인 자리에서 조용히 얘기했다. 또 야당에 속해 있다고 무조건 편들지 않는다. 나는 군 출신이다. 마냥 진보적이지 않다. 안보와 외교에서는 보수, 경제 사회 분야에서는 중도개혁적인 생각을 갖고 있다.”
- 장래 국회의원을 꿈꾸는 청춘들에게 해 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故 노무현 대통령 6주기 추모 행사에서 만난 한 중학생이 날 찾아온 적이 있다. 국회의원이 꿈인데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묻더라. 내가 두 가지를 말해 줬다. 학교 공부도 중요하지만 책을 많이 읽고 친구를 많이 사귀는 것도 ‘공부’라고. 책은 역사책을 많이 읽는 것이 좋다. ‘로마인 이야기’, 마키아벨리의 ‘군주론’ 등을 봐야 한다. 특히 추천하는 책은 삼국지와 채근담이다. 삼국지는 많은 사람들이 추천한다. 등장인물들(유비, 관우, 장비 등)의 위기극복 능력이나 지도자들의 결단을 보면 현실정치나 회사생활에서 모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채근담은 사회생활에서의 처세술을 알 수 있다. 짧은 글귀들이지만 읽다보면 마음이 정화된다.”
▲국정감사장에서 발언하고 있는 민홍철 의원.(사진제공=의원실)
“정치선진화 위해 정당기호 없애야”
민홍철 의원은 이날 “정치선진화를 위해서는 정당의 기호부터 없애야 한다”고 강조했다. 민 의원은 최근 여야를 중심으로 논쟁이 뜨거운 선거구획정 문제와 관련, “현행 소선거구제(한 지역구에서 한 명의 국회의원 선출)는 문제”라며 이같이 말했다.
- 안심번호 국민공천제와 권역별 비례대표제에 대한 의견은.
“현행 선거제도는 (1990년) 3당 합당 이후 지역주의를 고착화 시켰다. 복잡한 정치 구조 속에서 갈등을 양산하는 제도다. 야당은 기울어진 운동장 문제라고 주장한다. 그 말은 선거제도 자체가 불공평하다는 거다. 현재 국회의원 숫자는 300명이다. 여기서 지역구는 264곳이다. 지난 19대 총선 결과를 놓고 보면 득표율과 의석수가 다르다. 당시 새누리당이 전국적으로 얻은 정당 지지율은 42.8%였다. 나머지는 여당을 지지하지 않은 거다. 정당 지지율에 따라 의석도 42.8%를 가져가야 한다. 그런데 결과는 과반이 넘는 160석이다. 지지율과 의석수의 괴리가 있는 거다.
현행 제도는 사표(死票)가 많은 제도다. 특히 영남 지역에서 사표가 많다. 무슨 말이냐 하면 영남의 5개 광역시도(대구 경북 울산 부산 경남)에서 지역구 국회의원은 67개 의석이 있다. 19대 총선에서 평균 득표율을 보면 야당이 35~40% 가까이 얻었다. 67석 중에서 35%면 20석 정도는 야당에서 지역구 의원이 나와야 맞다. 그런데 세 명밖에 안 됐다. 나, 문재인 대표와 조경태 의원뿐이다. 나머지는 사표다. 영남 지역에서 여당을 지지하는 유권자들의 표는 사표가 된 거다. 이 같은 왜곡된 결과가 나타나면서 중앙정치도 갈등이 생기고 서로 인정을 안 하는 거다.”
- 그렇다면 선거제도를 어떻게 고치는 것이 좋다고 보나.
“이번에 선거구 획정이 논의되고 있다. 획기적인 선거제도는 독일식 정당명부제가 맞다. 정당 득표율에 따라 의석수를 정하는 거다. 왜곡된 득표율의 사표를 방지하고 지역주의를 극복하기 위해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 독일식 정당명부제를 도입하지 못한다면 일본식이라도 도입해야 한다. 개인적으로 석패율제를 가미한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도입하면 지역주의의 폐단은 완화될 것으로 본다. 현행 비례대표를 54명으로 유지한다고 해도 5개 권역을 나눠서 11명 정도씩 배분할 수 있다. 최소한 영남권역에 11명을 배정하게 되면 지역구 의석과 관계없이 영남권은 지역구 비례대표로 11명을 선택하는 거다. 야당이 40%를 얻었다면 4~5명을 뽑을 수 있다. 지역구에서 다 안 되더라도 영남에 야당 의원들이 있는 거다. 호남도 마찬가지다. 호남 29개 의석 중에서 20%정도 득표율을 얻으면 새누리당 의원이 3명 정도 있게 된다.”
- 정당 득표율을 얘기했는데. 영남권에서 선출된 의원들은 인물론으로 된 것 아닌가.
“결과적으로 인물론으로 찍는 것이 맞다. 다만 아직 우리나라는 지역적인 색깔이 강하다. 당만 보고 찍는 거다. 특히 영남지역은 사표가 많다. 51%가 돼야 과반이다. 득표율은 야당이 많은데 의석은 여당이 많다는 게 말이 되나. 형평에 안 맞고 정의에 반한다.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는 물론 다른 나라를 보면 번호로 뽑지 않는다. 선거 때 정당 후보자에 대한 기호를 정하지 않는다. 우리나라가 1945년 제헌 총선을 할 때는 문맹률이 90%가 넘었다. 지금은 1%도 안 된다. 번호를 보고 인물을 뽑아서는 안 된다. 가장 빨리 없애야 할 것이 선거 기호다. 지난번 교육감 선거 때 기호를 없앴다. 투표용지와 포스터 배열 등을 무작위로 했다. 그런 방식으로 가야 한다. 유권자들은 기호가 없으면 후보에 대해 자세히 보게 된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한국 정치의 선거제도에 있어서 가장 바꿨으면 하는 것이 바로 번호다.”
- 의원 수를 늘려야 한다고 생각하는지.
“선진국에 비하면 의원수가 적은 것은 사실이다. 우리나라는 권력의 70%를 대통령이 쥐고 있다. 그것을 깨기 위해서는 개헌을 해야 한다고 본다. 국회 제도를 양원제로 바꿔야 한다. 국회의원의 수를 늘리려면 대선거구제 시행이 필요하다. 16개 광역시도 각 지역구에서 3명씩 48명을 뽑아 상원 개념으로 하면 된다. 여야 갈등 때문에 해결을 못하면 3개월 내에 상원으로 올리고 거기서 해결하라고 하면 싸움이 없어질 거다. 지역을 위해 타협하게 되기 때문이다. 정쟁이 없어지는 거다. 생각을 바꿔야 한다. 300명 의원들이 개개인으로 보면 모두 열심히 한다. 하지만 정당과 지역이 나뉘다 보니 갈등이 생긴 것처럼 보이는 것도 안타깝다.”
- 당 윤리위원회 간사를 맡고 있다. 최근 안병욱 윤리심판원장이 사퇴 의사를 밝혔다. 정청래·조경태 의원 문제로 이중 잣대 논란도 있었는데.
“인사 문제는 내가 섣불리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안 심판원장이 사의를 표명하셨는데 정해지지 않았다. 이중 잣대도 아니다. 윤리심판원은 독립기구로서 역할을 하고 권한을 행사했다. 그런데 당내 뿐 아니라 언론도 결정하면 사사건건 다 불공평하다고 한다. 한쪽에 불리하다면 반대쪽에서 시비 걸고. 우리는 소신껏 독립된 판단을 했다. 심판원장도 진짜 힘들었을 거다.”
- 당내 친노(친노무현)와 비노(비노무현) 간 계파 갈등에 대한 우려가 크다.
“어느 정당이나 계파갈등은 있다. 갈등은 건전하게 작동되면 조직의 발전을 가져온다. 건전한 방향으로 발전해야 하는데 계파의 이익을 위해 접근하는 것 같아 우려가 된다. 어찌됐든 우리당은 혁신위가 들어왔다. 총선이 얼마 남지 않았다. 전쟁을 앞두고는 내부적으로 단결해야 한다. 때문에 앞으로 큰 태풍이 오거나 하지는 않을 것으로 본다.”
- 최근 국토위의 부산시 국감에서 ‘동남권 신공항은 가덕도가 제격’ 발언으로 주목 받았다.
“처음부터 신공항 유치가 필요한 지역으로 가덕도를 지지했다. 경남 발전도 중요하다. 그러나 국가 이익 등 여러 가지를 고려해 내린 결론이다. 전체적인 비용과 접근성 문제 등을 객관적으로 보고 접근했다. 지역이기주의로 접근하면 안 된다. 밀양은 농토가 많다. 부산 신항만은 가덕도에 있다. 남해고속도로도 잘 돼 있고. 가덕도로 하면 토지 보상금 등 비용이 많이 들지 않는다. 동남권 신공항 건설은 국가백년지대계다. 소음지역 회피와 24시간 운영이 가능한 가덕도가 제격이라고 본다. 현재 프랑스 엔지니어 사에서 용역을 맡아 조사하고 있다. 최종적으로는 그 곳에서 나온 결과를 수용해야 할 것이다.”
- 이번 국감에서 어떤 것들을 지적했나.
“기억에 남는 것은 LH(엘에이치) 공사 국감 때 대토 보상 문제를 제기한 거다. LH는 원주민들의 땅을 수용하고 이주 단지를 만든다. 그런데 보상금을 줄 때 순순히 동의한 사람들은 좋은 곳에 이주단지를 줬다. 반면 이의신청을 한 사람들은 나쁜 곳에 줬다. 작년부터 지적해서 이번에 고쳤다. ‘공공용지의 취득 및 손실보상에 관한 특례법’(공특법)에는 이의신청을 할 수 있게 돼 있다. 땅값이 낮으면 이의 신청이 가능하다. 그런데 이의신청했다고 대토를 줄 때 나쁜 땅을 주는 것은 잘못됐다. 별다른 얘기 없이 협조해준 사람이나 이의 신청한 사람들 모두에게 대토를 줄 때 차별을 하지 못하도록 했다. 대토 보상 비율을 높이기 위해서는 LH가 우량토지를 적극 개발해야 한다.”
◇ 민홍철 의원이 추천한 '삼국지'와 '채근담'은?
‘삼국지’는 중국의 위·촉·오 3국의 정사(正史)다. 진나라의 학자 진수가 편찬했다. 사기, 한서, 후한서와 함께 중국 전사사(前四史)로 꼽힌다. 위서 30권, 촉서 15권, 오서 20권, 합계 65권으로 돼 있다. 우리나라에 알려진 삼국지는 촉나라를 중심으로 한 정사와 설화를 엮은 나관중(명나라)의 ‘삼국지연의’를 번역한 것이 많다. 대표적인 작품이 이문열 작가와 황석영 작가의 삼국지다. 만화 삼국지로는 고 고우영 화백과 이현세 작가의 작품 등이 있다.
동양의 탈무드라고 불리는 ‘채근담’은 명나라의 문인 홍자성의 저서다. 전편과 후편을 합쳐 365조로 구성됐다. 간결한 문장이 특징이다. 일부 내용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棲守道德者(서수도덕자) 寂寞一時(적막일시) 依阿權勢者(의아권세자) 凄凉萬古(처량만고) / 達人觀物外之物(달인관물외지물) 思身後之身(사신후지신) 寧受一時之寂寞(영수일시지적막) 毋取萬古之凄凉(무취만고지처량)
도덕을 지키는 사람은 일시적으로 적막하지만 권세에 의지하고 아부하는 자는 만고에 처량하다. / 달인은 사물 밖의 사물을 관찰하고 몸 뒤의 몸(훗날)을 생각한다. 일시적인 적막을 겪을지언정 만고에 처량함을 취하지 말라.
권력에 아부하지 말고 자신의 소신을 지키며 살아갈 것을 당부하는 내용이다.
(CNB=최서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