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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시장'흥행몰이…험난한 현대사 우리에게 무얼 남겼나

6·25전쟁부터 이산가족찾기까지 다사다난한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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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최정숙기자 |  2014.12.23 12:00:18

“할배, 화내지 마세요. 할배가 화내면 무서워요. 그런데 할배는 원래 그렇게 화를 잘 냈어요?”

지난 17일 개봉한 영화 ‘국제시장(감독 윤제균, 배급 CJ엔터테인먼트)’ 속 대사다. 한국전쟁이 발발한 1950년 이후 잊혀져 가고 있는 현대사의 굵직한 사건들을 보여준 이 영화는 개봉 첫 주 150만명 이상의 관객을 동원하며 흥행몰이 중이다.

‘국제시장’은 험난한 시대를 살아온 아버지들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그려냈다. 황정민 김윤진 오달수 정진영 장영남 라미란 김슬기 등 배우들의 명연기까지 더해지면서 관람객들로부터 10점 만점에 9.3점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영화에서는 화를 잘 내는 할아버지가 등장한다. 손녀는 할아버지에게 화를 잘 내는 이유를 물어보고, 할아버지는 왜 자신이 이렇게 변했는지 회상한다.

6·25전쟁부터 파독(派獨), 월남전, 이산가족찾기 행사까지 산업화 세대가 겪은 현대사를 정리했다.

▲사진=영화 '국제시장' 포스터

◇ 1950년 6월 25일, 동족상잔의 비극 벌어지다

동족상잔(同族相殘)의 비극은 1950년 6월 25일에 벌어졌다. 북한 김일성의 남침(南侵)으로 국토는 피폐해지고 많은 사람들은 피난길에 오른다.

가수 현인이 부른 노래 ‘굳세어라 금순아’ 가사에는 당시 시대배경이 반영돼 있다. 1950년 12월 23일, 피란민(避亂民)들이 모인 함경남도 흥남의 부두는 눈보라가 휘날렸다.

1950년 9월 15일, 인천상륙작전을 성공으로 이끈 맥아더 사령부는 압록강까지 진격한다. 하지만 중공군(중국공산군)의 개입으로 전세가 역전된다.

같은해 12월 12일, 맥아더 장군은 유엔(UN)군과 국군을 흥남 항구에서 동해로 철수시키라는 명령을 내린다. 피란민들은 부두로 몰려들었다. 그러나 미국 상선인 메레디스 빅토리(Meredith Victory)호에는 이들을 태울 자리가 없었다.

‘국제시장’에는 한국의 젊은 군인이 미국의 장군을 설득하는 장면이 나온다. 피란민들이 중공군에 의해 죽임을 당할 수 있으니 배에 태워달라는 것이다. 결국 이 장군은 배에 싣고 있던 무기를 버리고 피란민들을 태울 것을 지시한다.

이 배경의 주인공은 당시 군사고문관 통역요원이었던 현봉학 박사와 미10군 단장인 알몬드 장군이다. 현 박사의 저서인 ‘현봉학과 흥남 대탈출(1999년)’에 자세한 내용이 나와 있다. 1군단장인 김백일 장군과 현 박사는 알몬드 장군 등을 설득해 흥남부두로 몰려든 피란민들을 탈출시키는 공을 세운다.

화물선이었던 빅토리호의 최대 탑승 가능 인원은 2천명 정도였다고 한다. 그러나 무려 1만4천명을 태웠다. 이는 최다 인명 구출로 기네스북에 오르기도 했다.

또 영화에는 나오지 않았지만 배 안에서 5명의 아기가 태어났다고 한다. 이렇게 북한을 빠져나온 피란민들의 상당수는 부산 국제시장에 정착하게 된다.

1953년 7월 27일, 이승만 대통령은 “동포여 희망을 버리지 마시오”라며 정전협정이 체결됐음을 알린다. 이후 현재까지 남과 북은 휴전 상태로 남아 있다.

◇ 1960년대 파독 근로자들, 외화획득 나서다

1960년대 실업문제 해소와 외화획득을 위해 8천여명의 광부와 1만명이 넘는 간호사들이 독일(서독)에 파견된다.

독일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고도의 경제성장인 ‘라인강의 기적’을 이루면서 노동력 부족사태를 겪는다. 독일인들은 3D(힘들고, 더럽고, 위험한)업종으로 분류되는 노동을 외면했다. 부족한 일자리는 한국인들이 채웠다.

1963년 파독광부 500명 모집에 4만6천여명이 지원한 것으로 기록돼 있다. 광부들은 3년 계약을 했고, 매월 600마르크(160달러)의 높은 수입을 받았다고 한다. 간호사들은 매년 1천만 마르크 이상의 외화를 국내로 송금해 ‘한강의 기적’을 만드는데 기여한 것으로 평가 받고 있다.

영화에서 덕수는 1964년 봄에 함보른광산으로 떠난다. 함보른광산은 박정희 대통령이 같은해 겨울, 파독근로자들을 격려하기 위해 방문한 곳이기도 한다.

덕수는 광부 일을 하면서 죽을 고비를 넘기고, 간호사로 간 영자는 시체를 닦아야 했다. 지금의 젊은 세대들은 꺼려할 일들을 부모 세대는 겪은 셈이다.

최근 들어 파독근로자들에 대한 재평가가 활발해지고 있다. 지난 8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새로 쓴 한독관계 반세기展(새누리당 황인자 의원실 주최)’은 파독 당시의 시대배경을 보여줬다.

앞서 7월에는 경남 남해 독일마을에 파독근로자들의 역사와 애환을 한눈에 볼 수 있는 파독전시관이 문을 열었다.

▲지난 8일 국회 의원회관에서는 '새로 쓴 한독관계 반세기展'이 열렸다.(사진=CNB)

◇ 1964년 7월 18일, 첫 월남전 파병하다

월남전의 첫 파병은 1964년 7월 18일에 시작됐다. 1965년 10월, 베트남 ‘깜낭항’에는 주월 한국군 사령부가 설치됐다.

첫 파병 이후 우리 군이 철수한 1973년 3월 23일까지 9년간 32만명이 넘는 국군장병이 월남전에 참전했다.

한국군의 파병은 대한민국에 경제적 이득을 가져왔다. 1964년부터 1973년까지 한국군의 월남전 참전으로 인한 해외 전투수당은 총 2억3556만 달러였다. 이 중 82.8%에 달하는 1억9511만 달러가 국내로 송금된 것으로 기록돼 있다.

경제적 효과로는 무역수지 2억1060만 달러, 무역외 수지 8억2천만 달러 등 68억7천만 달러의 수입을 올렸다. 이 돈은 경부고속도로 개통 등 각종 경제개발사업에 사용됐다.

베트남에는 군인이 아닌 기술자들도 파견됐다. ‘국제시장’에서 덕수는 기술자로서 베트남에 돈을 벌러 간다. 덕수의 봉급은 850달러로,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급여였다.

영화 속에도 등장하는 정주영 회장이 설립한 현대건설 등 한국 기업들은 한국군에게 필요한 물자와 용역을 조달하면서 특수를 누리게 된다.

일각에서는 한국군과 파견근로자가 받는 봉급, 한국기업의 사업 수익 등을 따지면 당시 연간 수출 총액의 100배인 100억 달러 이상의 외화를 벌어들였다는 주장도 펴고 있다.

덕수는 그곳에서 최고의 전성기를 누리다 해병대에 자원입대해 월남전에 참전한 가수 남진을 만난다. 동방신기의 유노윤호가 연기한 남진은 실제 월남전에 참전한 것으로 유명하다.

다만 이 장면에서는 ‘옥의 티’가 등장한다. 덕수는 1974년 여름에 베트남을 가서 남진을 만나고, 75년 4월에 베트남전이 종전돼 귀국한다.

하지만 1973년 1월 23일, 파리에서 베트남 평화협정이 조인되면서 한국군은 1973년 3월 23일까지 철수를 완료했다. 때문에 74년에는 파견기술자가 한국군을 만날 수 없는 상황이다.

정치권에서는 천대 받고 있는 월남전 참전 군인에 대한 예우를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지난 9월 새정치민주연합 김춘진 의원은 월남전 참전 군인에게 미지급된 전투근무수당에 준하는 전투근무급여금을 지급하는 내용의 ‘월남전 참전군인 전투근무급여금 지급에 관한 특별법’을 대표발의 했다.

◇ 1983년 6월 30일, 6·25 33주년 이산가족찾기 행사하다

영화 ‘국제시장’에서 관람객들의 눈물을 쏟게 하는 장면은 남북이산가족 찾기다.

1983년 6월 30일, KBS는 6·25 33주년 특별생방송(진행 김동건)에서 여의도광장에 모인 이산가족들의 사연을 방송했다. 배경음악으로 사용된 패티김의 노래 ‘누가 이 사람을 모르시나요’는 이산가족들의 아픔을 들려줬다.   

당시만 해도 여의도광장이 꽉 들어찰 정도로 수많은 인파가 몰려들었다. 그러자 정부는 1983년 7월 6일, 국무총리 주재로 이산가족찾기운동과 관련해 7개 부처 관계장관회의를 열어 지원방안을 협의했다.

국가기록원에 따르면, 정부는 여의도에 있는 산업은행 신축부지를 이산가족들이 임시로 1년간 사용할 수 있도록 한 뒤 서울시로 하여금 7천2백평에 ‘만남의 광장’을 착공토록 했다. ‘만남의 광장’은 대외적으로 대한적십자사가 운영의 책임을 맡고, 방송은 KBS, 시설관리는 서울시가 맡았다. 당시 1년 동안의 이산가족찾기운동으로 모두 1만4947건의 상봉이 이뤄졌다.

이산가족상봉 ‘만남의 광장’ 등의 역사를 가진 여의도광장은 11만평으로, 최대 90만명을 수용할 수 있는 곳이었다. 현재는 10만4천여그루의 나무 등이 심어져 있는 여의도공원으로 바뀌었다.

이산가족상봉 문제는 시급히 해결해야 할 숙제다. 영화에서처럼 대상자들은 점점 고령자가 되고 있다.

새누리당 심윤조 의원이 최근 통일부로부터 제출받은 ‘2010년~2014년도 연도별 이산가족 생존자, 사망자, 신청자 현황’ 자료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매년 평균 3800여명의 이산가족 사망자가 지속적으로 늘고 있다.

올해 9월 말을 기준으로 이산가족정보통합센터에 등록된 이산가족 상봉 신청자 12만9591명 중 사망자 수가 6만명을 넘어섰다. 이산가족 6만9279명 가운데 절반 이상인 51.6%는 80세 이상이다.

현재 사망 추세와 고령자수를 감안할 경우 내년 말에는 이산가족 사망자 수가 생존자 수를 넘어선다는 전망도 나온다.

박근혜 정부는 지난 2월 이산가족 상봉 행사를 진행한 바 있다. 3월에는 대한적십자가 북한 적십사에 이산가족상봉 정례화 등 협의를 위한 실무접촉을 제의했다. 하지만 이는 북측이 “실무접촉을 가질 환경이 아니다”라며 우리 측 제의를 거절해 성사되지 않고 있다.

영화에서 백발이 된 노인은 자신의 아버지를 생각하며 이렇게 말한다. “아부지예~ 이만하면 잘 살았지예~ 그런데 저 진짜 힘들었거든예~”

세대와 지역간 갈등을 치유하고, 그 때 그 시절 굳세게 살아온 우리 아버지들의 이야기인 영화 ‘국제시장’. 역사적 배경을 알고 보면 이해가 더 잘 된다.

* 관련기사 보기
‘새로 쓴 한독관계 반세기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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