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그림들은 제주도 숲 속을 거닐며 느낀 감성을 감각적으로 그려낸 이광호(47) 작가가 2년여에 걸쳐 붓으로 그려낸 ‘그림 풍경’을 서울 삼청로 국제갤러리 1관에 12월 16일부터 공개한 모습이다.
작가는 겨울 숲의 특정 장소를 시간의 변화에 맞추어 정기적으로 방문해 장면을 포착하고, 빠른 붓질과 레이어를 통해 자신만의 표현 방식을 숲의 실체를 드러내기 위해 사용했다.
이전 작업인 ‘Inter-View',’선인장‘ 작업에서 대상을 선정하고 일정한 거리를 두어 관조하는 방식을 취한 것에 반해, 이번 ’그림 풍경‘에서는 작가 스스로 숲 속으로 직접 들어가 뒤엉켜 있는 넝쿨과 잔가지 속에서 구획된 대상이 아닌 겨울 숲 풍경 자체의 분위기를 실감나게 그려낸다.
“숲 안에 들어가서 직접 느낀 것이 감각적 요소가 더욱 강하게 드러났죠. 시각과 함께 촉각까지도 작업으로 옮겨 올 수 있는 것에 매력을 가지게 됐죠”
이광호가 그려낸 나무 넝쿨과 덤불 덩어리는 그가 보고 담아온 겉모습이 아니다. 직접 풀숲으로 들어가 그들과 호흡을 하며 교감을 한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
그는 어떤 대상을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신이 함께하는 덤불의 분위기를 붓을 든 화가의 몸짓을 통해 그려낼 뿐이다.
“붓에 물감을 뭍이고 캔버스에 첫 획을 긋는 순가 자연스럽게 감정이 붓에 전달되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던 시간의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전시장에 걸려 있는 대형 풍경 작품들은 단순히 바라보는 대상이 아니라, 직접 그 안을 거닐며, 언제인가 가봤던 장소에 대한 기억을 되살리는 느낌을 관객들에게 부여한다.
이광호는 사람들마다 저마다 마음속의 숲의 정령이 있다고 한다. 숲을 바라본다는 것은 형태가 있는 외곽선을 보는 것이 아니라 일정한 장면이 마음에 인식이 되는 것이라 볼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포착한 장면이 작가 고유의 기법인 고무 붓과 바늘의 사용으로 거친 질감을 만들어낸다.
이 과정을 통해 화면은 작가의 그리는 행위에서 전달되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일련의 육감적인 느낌을 지니게 되고, 구상적인 이미지를 기반으로 하지만 여러 층의 물감으로 인해 뭉개지고 벗겨짐으로써 작가가 남긴 흔적으로서의 터치들로 인해 추상적인 화면으로 화면을 완성한다.
이광호의 ‘그림 풍경’은 개념 혹은 아이디어 대신 그림이 가진 본질적 조건들에 대한 탐구라고 할 수 있다.
그는 만지듯이 보고, 보면서 만지듯이 그린다. 이러한 점에서 작가에게 있어 그리는 행위는 그 행위 바깥에 있는 어떤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고 할 수 있다.
그에게 있어 그리는 행위는 그것이 수행되는 과정 자체로서 이미 목적을 충족시키고 있다. 전시는 2015년 1월 25일까지.
CNB=왕진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