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과 정동'은 지난 20년 동안 현대 자본주의 비판에 참여한 수많은 사상가들에게 작은 '고전'이자, 핵심적인 참고문헌으로 여겨지고 있다.
이 책은 포스트포드주의 신경제의 두드러진 특징들, 예컨대 '소통'의 중심성과 소유-공급 관계의 역전을 설득력 있게 보여줌으로써, 마라찌가 이후 '자본과 언어'와 '금융자본주의의 폭력'에서 보다 구체적인 쟁점들로 나아갈 수 있게 한 결정적인 단계였다.
2008년 이후 전 세계를 강타한 금융위기의 한가운데에서 마라찌가 집필한 소책자인 '금융자본주의의 폭력'은, 금융위기가 경제 확장이 부족해서 일어난 내파적 결과라기보다는 오히려 자본 축적의 중요한 구성 요소라는 사실을 역설했다.
'자본과 언어'는 신경제에서 실물 경제와 화폐-금융 경제 두 영역이 언어와 커뮤니케이션에 의해 구조적으로 영향을 받는다고 주장하면서 금융시장이 변화하고 노동이 비물질노동으로 변형되는 것이 정확히 동전의 양면이라고 주장했다.
이 두 책 모두 '자본과 정동'에서의 분석에 기초를 두고 있다. 이 책에서 마라찌가 반복해서 설명하는 것처럼, 우리의 언어와 소통이 생산과정에 있어서나, 잉여의 창출에 있어서나 근본적인 것이 되었다는 사실은 현대사회에서 노동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체감할 수 있는 사실이다.
그러나 소통이 어떻게 자본 안에서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것인지, 지난 몇십 년 동안 어떠한 역사적 변화를 거쳐 생산과정에서 육체노동만큼 혹은 그 이상으로 언어능력, 소통능력이 중요성을 띄게 되었는지를 이해하는 것, 다시 말해 ‘금융경제의 작동방식을 이해하는 것’은 여전히 경제전문가들의 손에 맡겨진 일처럼 보인다.
마이클 하트가 '자본과 언어'에 붙이는 서문에서 썼듯이 마라찌는 “금융시장의 복잡성과 경제 정책에 관해 일반 대중과 소통할 수 있는 … 현재의 정치 이론과 사회 이론의 가장 흥미로운 특질들을 끌어내 제시하고 성찰할 수 있는 참으로 드문 유형의 경제학자이다.”(『자본과 언어』, 8쪽) 예상과는 달리 마라찌가 이 책에서 사용한 대부분의 자료 출처들은 철저하게 자본주의 경제에 목매달고 있는 주류 경제학자들과 기업주들이다.
경영 분야의 '권위자' 피터 드러커, 인텔 CEO 앤디 그로브, 최근 경제성장론의 대가로 알려진 폴 로머 등 친숙한 인물들이 인용되고 있다. 마라찌는 자본주의의지속 이외에 다른 것을 바라지 않는 이들의 주장을 주의 깊게 검토하면서도, 이들과는 달리 현재의 가치 창출 및 착취 형태들을 정당한 것이나 불가피한 것으로 제시하지 않으면서 그 형태들을 구성하는 실천들을 설명해 낸다.
△지은이 크리스티안 마라찌 △옮긴이 서창현 △펴낸곳 도서출판 갈무리 △236쪽 △정가 17000원.
CNB=왕진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