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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서울 한복판 ‘일본군 관사’ 4년째 흉물방치 ‘왜’

서울시-마포구-SH공사, 일본군 숙소 복원해놓고 논란 일자 “나 몰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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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도기천기자 |  2013.07.09 17:56:52

(CNB=도기천 기자) 서울 상암동 DMC(디지털미디어시티) 내 한 아파트 단지에 일제시대 ‘일본군 장교 관사’가 이축 복원돼 3년간 방치된 기막힌 사실이 CNB단독 취재결과 확인됐다.

문화재청과 서울시는 일본군관사를 보존가치가 있는 근대문화재로 판단, 수십억원의 혈세를 들여 복원했지만, 주민반발이 거세지자 문화재 등록 심의를 보류한 상태다.

관할 마포구청 또한 주민여론을 의식해 서울시에 관리책임을 떠넘겼다. 일본군 관사는 4년째 주인없는 시설물로 방치돼 탈선청소년들의 우범지대로 자리 잡았다. 목조건물이라 화재위험에 노출된 데다 외관마저 흉물스러워 주민민원이 끊이지 않고 있다. CNB가 내막을 단독 취재했다.

수십억 들여 복원했지만 주민반발로 문화재 등록 보류
4년째 폐가로 방치…화재노출·탈선청소년 아지트 전락
마포구-문화재청-SH공사, 문화재 지정 놓고 ‘동상이몽’
주민들 “매일 밤 일제 망령에 진저리” 철거요구 봇물

일본군 관사가 최첨단 미디어타운이 조성되고 있는 상암DMC에 들어선 경위는 8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지난 2005년경 서울시 산하 SH공사가 상암동에 대규모 택지를 조성하면서 일본군 장교관사로 추정되는 목조건물 22개동을 발견했다. 동네주민들로부터 일본사람들이 거주했던 건물이라는 것을 확인한 SH는 문화재청에 이 사실을 통보했다. 문화재관리법에는 건설사가 택지를 조성할시, 문화재로 추정되는 유물 등이 발견되면 문화재청에 즉시 통보해야 한다.

문화재청은 지표조사를 통해 “일본군 관사 마을이 역사적인 보존가치가 있다”는 결론을 내리고 2006년 초순에 SH공사 측에 보존대책을 마련할 것을 통보했다. 관련법규에 의하면 택지지구조성 등 개발 지역에서 문화재적 가치가 있는 유물이 발견될 경우 시행사가 보존대책을 수립해 복원 등의 절차를 밟도록 하고 있다.

이에 따라 SH측은 상명대 박물관팀에 유물조사를 의뢰했다. 일본군 관사 단지의 상세조사 는 경기대학교 건축대학원 안모 교수팀에게 맡겼다. 또 한강문화재연구원은 매장문화재 발굴조사에 착수하는 등 각 분야 전문가들이 참여했다. SH공사와 문화재청은 일본군관사 22개동 가운데 상태가 양호한 2개동을 지금 장소로 옮겨 복원하기로 결정했다.

현황조사 및 실측→문화재청 정밀조사→이축 복원할 부지선정→복원공사 등 3~4년에 걸쳐 복원작업이 진행됐으며, 2010년 10월경 총사업비 13억원을 들여 복원이 완료됐다.

당시 조사결과에 따르면 일본군관사는 1930년대 일본군 경성사단이 위관급 장교들을 위해 지은 숙소로 밝혀졌다. 당시는 중일전쟁 때였고, 상암동과 인접한 수색일대는 경의선을 통해 전쟁 물자를 수송하던 대규모 병참기지가 존재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현재 이축·복원된 일본군관사 단지는 소위·중위급 장교숙소 1곳과 대위급 숙소 1곳 등 모두 2개동과 전시관, 마당, 방공호 등으로 구성돼 있다. 각각의 장교숙소에는 당시의 생활상을 알 수 있는 각종 도구와 살림살이가 그대로 복원돼 있다. 또 마당에는 우물과 두레박, 정원 등이 당시 모습대로 복원돼 있다. 동과 동 사이에는 방공호가 복원돼 당시 전시 상황을 느끼게 한다.

맞은편엔 일본인학교…역사성·위치 논란

일본군관사의 복원이 완료되자 SH공사는 관할 지자체인 마포구청에 일본군관사를 기부채납하기 위한 절차에 들어갔다. ‘택지개발촉진법’ 등에 따르면 택지조성이 완료되면 시행사는 관할 지자체에 학교, 공원, 문화재 등 기반시설물 일체를 넘겨줘야 한다.

SH공사측은 마포구청에 일본군관사의 인수인계 및 문화재 등록에 관한 사항 일체를 이첩했다. 이후 마포구청은 서울시와 문화재청에 일본군관사를 등록문화재로 지정해 줄 것을 요청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문화재 지정이 순조롭게 진행되는 듯 했다. 하지만 당시 상암2지구 아파트단지에 막 입주한 주민들이 단지 내에 복원된 일본군관사를 보고 민원을 제기하기 시작했으며, 일부 언론을 통해 이 사실이 보도되면서 문제가 불거지기 시작했다.

주민들은 일제 강점기의 잔재물을 아파트 단지 내에 버젓이 복원해 놨다는 사실에 격분했다. 더구나 복원비용이 아파트 분양대금에 포함됐다는 사실이 밝혀지며 고분양가 논란으로 번졌다.

특히 주민들은 이축·복원된 일본군관사의 위치를 문제 삼았다. 일본군관사는 1만여 세대가 거주하는 메머드급 아파트단지 내 통학로 한복판에 위치해 있다. 관사 바로 옆에 하늘초등학교가 있고, 인근 상지초, 상암중, 상암고로 등교하는 학생들은 관사 옆을 거쳐야 한다.

일본군관사 주변에는 서울시에서 의욕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상암디지털미디어시티(DMC) 건립공사가 진행 중이다. LG CNS, 팬택 등 IT대기업과 KBS미디어센터, SBS프리즘타워 등 방송사들이 즐비하게 들어서 있고, 내년에는 MBC와 YTN, 중앙·조선·동아일보의 종합편성채널 방송국이 입주할 예정이다.

일본군관사 바로 맟은 편에는 도로 하나를 사이에 일본인 학교가 자리잡고 있다. 주민들은 하필이면 일본인학교 옆에 일본군관사가 복원된 것을 납득하기 힘들다는 입장이다.

일본인학교는 일본군관사가 복원완료된 시점인 2010년 9월27일 개교했다. 유치원에서 중학과정까지 가르치며 학생수는 400여명 정도다. 원래는 강남구 개포동에 학교가 있었으나, 상암동에 택지가 조성되면서 서울시로부터 부지를 사들여 교사를 신축 이전한 것. 이를 두고 주민들은 SH공사에서 일본군관사 복원 부지를 정할 때 일본인학교 유치를 염두에 둔 것 아니냐는 의혹을 지금까지도 품고 있다.

SH공사 측은 “일본군관사 복원이 결정된 것은 2006년경이고, 일본인학교가 상암동 이전을 결정한 것은 2009년경이므로 (시기적으로) 연관성이 전혀 없다”고 밝혔지만, 주민들은 “상암2지구 택지개발이 시작되던 2005년 분양자료에 외국인학교부지가 이미 표기돼 있었던 것으로 보아 그때부터 SH와 서울시가 대상학교를 물색하고 있었던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CNB가 현장 확인결과, 일본군관사는 일본인학교 교실창문에서 바로 내려다보이는 위치였다.

이 동네에서 중국집을 운영하고 있는 박상범(43)씨는 “관사가 일본인 학생들에게 우월감을 심어줄 우려가 있지만, 반대로 우리 학생들은 매일 ‘치욕의 역사’와 마주해야 한다”고 한탄했다.

마포구청 “문화재 추진 접었다” 정치쟁점 부상

이처럼 주민들의 반발이 거세지자 관할 지자체인 마포구청은 관사의 등록문화재 지정 추진을 사실상 접었다. 2011년 국정감사와 그해 10월 서울시장 보궐선거 때는 일본군관사 문제가 정치쟁점으로 부상하기도 했다.

새누리당(당시 한나라당) 이철우 의원은 2011년 9월 문광부 국정감사에서 일본군관사를 문화재로 지정하려는 문화재청의 태도를 문제 삼았다. 이 의원은 “의친왕이 기거했던 관훈동 196번지 일대의 사동궁은 포크레인에 밀려 주차장으로 변한 반면 마포구 상암동의 일본군 장교 관사는 혈세를 들여 이축·복원됐다”고 질타했다.

조국 서울대 교수는 서울시장 보궐선거 3일전인 그해 10월 23일 자신의 트위터에 “MB(이명박) 정부와 서울시가 학계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상암동에 일본군 장교 관사를 복원하기로 결정했다”며 비판했으며, 이에 일부 보수언론은 “일본군 관사 복원은 노무현 정부 때 문화재청이 결정했던 사안”이라며 반박하기도 했다.

논란이 일자 SH공사는 지난해 초 마포구청과 협의없이 일본군관사를 문화재청에 등록문화재로 신청했다. 마포구청이 SH로부터 일본군관사 기부채납을 거부하자, 소유주인 SH가 단독으로 문화재지정을 요청한 것. 문화재청은 그해 4월 5일 근대문화재분과 문화재위원회 검토를 거쳐 같은 달 19일 문화재 등록예고를 강행했다.

하지만 주민들은 상암월드컵파크 10단지 입주자 대표 등의 명의로 이 건물의 문화재 등록을 반대하는 연명을 받아 문화재청에 의견서를 제출했고, 결국 문화재청은 6월 7일 문화재위원회 심의를 통해 보류 결정을 내렸다. 이후 7월 17일 주민설명회를 열어 주민들을 설득했지만 여전히 강하게 반발하자 8월 2일 다시 보류 결정을 내렸다.

일본군관사가 복원된 지 3년 가까이 지났지만 이처럼 주민들의 반발, 행정기관 간의 책임 미루기 등으로 인해 아직도 결론을 내지 못한 채 방치되고 있다.

반경호 마포구청 문화기획팀장은 “주민정서를 고려할 때, 마포구가 (일본군관사를) 문화재로 다시 추진할 의사는 전혀 없다”며 “대체부지를 마련해 다른 곳으로 이전하거나, 아예 다른 시설로 활용하려고 해도 소유권이 SH공사로부터 넘어오지 않은 상태라 권리행사를 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SH공사 관계자는 “일본군관사가 속해있는 상암2지구는 이미 2010년 12월에 택지개발이 완료됐으며, 관계법에 의거해 마포구에 기부채납 인수인계 절차를 신청했으나 마포구가 이를 거부했다”고 주장했다.

서울시 관계자는 “문화재청과 SH공사가 주관해서 진행한 복원 사업인데다, 아직 진행 중인 사안이라 서울시가 이래라저래라 할 처지가 아니다”고 밝혔다.

이들의 말을 종합해보면 일본군관사에 대한 반발 여론이 확산되자 마포구가 발을 빼는 바람에 아직도 소유주가 SH공사로 돼 있다는 것. 통상 택지개발이 완료되면 관련 시설물을 관할 지자체가 즉시 인수하고 있는데, 이번 경우는 상당히 이례적이다.

市-SH공사-마포구 책임전가 ‘급급’

이처럼 관계기관들이 서로 책임을 미루는 사이, 일본군관사로 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주민들의 몫이 됐다.

아파트 단지 통학로 한복판에 장교관사, 방공호 등 일제 강점기 군사시설물이 버젓이 자리 잡고 있는데, 거무스름한 외관이라 을씨년스럽기까지 하다. 목조건물이라 화재위험이 도사리고 있지만, 일부 청소년들은 이곳을 흡연·음주 등 탈선장소로 활용하고 있다.

바깥쪽에 펜스가 쳐져있지만 높이가 낮아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안으로 접근할 수 있는 구조다. 문화재청은 이곳에 당시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전시실까지 마련해 뒀지만 지금은 먼지만 쌓여가고 있다.

마포구청이 근린공원 내 공공근로 인력 1명을 투입해 가끔씩 청소하는 게 관리의 전부였다. 그나마도 평일에 국한된 얘기다. 주말과 공휴일에는 사실상 폐가로 방치된 상태였다. 특히 일몰 후에는 가로등조차 없어 ‘범죄 사각지대’로 보였다.

일본군관사의 이축·복원에 소요된 수십억원의 비용은 주민들의 아파트분양가에 산정됐다. 가구당 적게는 수십만원에서 많게는 수백만원에 이르는 분양금을 더 내야 했다.

일본군관사가 들어서 있는 10단지 아파트에 거주하고 있는 주부 서모(36)씨는 “밤에는 불빛 한 점 없는 빈집(일본군관사)들이라 지나갈 때마다 등골이 오싹해진다”고 말했다.

또다른 주민 오모(50)씨는 “아이들이 아파트 단지에서 학교로 가려면 이곳(일본군관사)을 거쳐야 하는데 등하교 하는 아이들을 볼 때마다 착잡한 심정”이라며 “전시실을 마련해 역사교육의 장으로 활용한다기에 참았지만 지금은 아예 폐가 상태로 방치되고 있다”고 말했다.

문화재청 “아픈 역사도 보존” 문화재 강행

주민들의 민원에도 불구하고 ‘열쇠’를 쥐고 있는 문화재청은 한 발짝도 물러설 수 없다는 입장이다.

문화재청은 CNB에 보내온 공식답변서를 통해 “치욕스러운 역사의 잔재물도 보존을 통해 역사적 교훈을 줄 수 있는 교육의 장으로 활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며 “시대의 아픔을 후손들에 널리 알려 다시는 부끄러운 역사가 재현되지 않도록 교훈으로 삼기 위해 시대적 증거물을 보존 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일본군관사의 등록문화재 지정 의지를 굽히지 않겠다는 것.

다른 곳으로 옮겨달라는 요구에 대해서도 “상암2지구 택지개발사업으로 이미 원위치에서 130m 떨어진 곳으로 이축복원 한 상황이라 다시 이전하는 것은 곤란하며, 매장문화재 보호 및 조사에 관한 법률 제9조(문화재 보존조치의 지시 등)에 의거, 이전복원 된 보존유적이라 철거할 수 없다”고 밝혔다.

이번 사태는 결국 일본군관사의 이축·복원 당시 주민여론을 수렴하지 않은 탁상행정의 결과로 보인다. 일본에 대한 주민정서를 충분히 고려했다면 대체부지를 마련해 다른 곳으로 옮겼거나, 아예 문화재 지정을 포기했을 수도 있다.

당시 문화재심의위원으로 참여했던 서중석 교수(역사문제연구소장·성균관대 사학과)는 “(일본군관사가) 일제의 군대시설물인만큼 복원 자체를 놓고도 이견이 많았다”며 “복원이라는 용어가 과연 적절한가에 대한 논란도 있었으며, 3~4명의 위원들은 신중을 기하자는 입장이었다”고 당시 분위기를 전했다. 문화재심의위원들조차 선뜻 동의하기 힘든 일을 여론수렴 절차 없이 강행한 것이다.

이 지역 구의원인 오진아(42·여)씨는 “지역의 흉물로 인식돼 민원이 끊이지 않고 있는 일본군관사를 지금이라도 다른 곳으로 옮기거나 아예 없애서 그 공간을 주민들에게 돌려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 도기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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