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종로구 효자동에는 예부터 유명한 작명가들로 인해 지금까지 작명소의 맥이 이어져 오고 있다. (사진=김정민 기자)
굳이 이름 석자가 인생에 있어 얼마만큼의 영향력을 행사하는가에 대한 논의는 차치하고서라도, 이름은 한 사람을 평생 따라다니는 ‘간판’으로서 그 중요성을 무시할 수는 없다.
‘사람의 이름=그 사람’이라는 공식 하에서 자녀들에게 좋은 이름을 붙여주기 위한 부모들의 고민은 클 수밖에 없다. 또한 이름이 마음에 들지 않아 개명을 하려는 사람, 인생이 ‘이유없이 꼬이는’ 이유를 잘못된 이름에서 찾는 사람들에게 ‘더 좋은 이름’은 굉장히 중요한 사안이다.
과연 사람의 이름이 그 사람의 인생을 좌우할 수 있을까? 그렇다면 그 근거는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이름을 잘 짓는 방법은 무엇일까?
효자동에 위치한 작명소에서 평생을 사람들에게 이름을 지어주는 것은 물론, 궁합·사주·길일 등을 봐주고 있는 김학래 도사(76, 이하 김도사)를 찾았다. 60년을 작명가로서 일해온 김도사가 말하는 이름의 중요성과 이름 짓는 법에 대해 들어본다.
서울 종로구 효자동 일대에는 유난히 작명소 간판이 많이 보인다. 이유는 1950년대에 작명가로 명망을 날렸던 김봉수라는 작명가 때문이다. 지금은 고인이 된 김봉수 선생 때문에 ‘이름을 지으려면 효자동으로 가라’는 말이 생길 정도였다.
이후 작명 대가들이 효자동으로 모이게 됐다고. 80년대에만 하더라도 60여개 정도의 철학관이 있었을 정도로 이곳은 사주와 작명의 본원인 셈이다.
어려서부터 학문과 전통사상에 관심이 많던 김도사는 16살 때 지리학과 주역을 본격적으로 공부하기 시작했다. 19살 때는 이미 풍수지리학과 주역에 대한 폭넓은 이해로 사람들에게 재미삼아 점괘를 봐주곤 한 것이 오늘에 이르게 됐다고 한다. 6·25 전쟁시 군에서도 김도사의 뛰어난 점괘로 인해 동료 군인들은 물론 장교들까지도 점을 봐달라고 찾아 올 정도였다.
■ 이름은 주역 8괘가 기본…사주팔자 및 여러 조건 맞춰야
▲김학래 도사는 이름이 사람의 인생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작명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사진=김정민 기자)
“살고 죽는 문제는 사주팔자에서 비롯되며, 잘 살고 못 사는 문제는 이름에 있다”는 것이 이 세계의 기본 명제이다.
김도사는 이름은 사람에게 있어서 의복과도 같아서 그 사람에게 잘 맞는 옷을 입으면 사람을 보호하고 걸맞지만, 잘못 입을 경우 오히려 해가 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사주는 좋게 태어났는데 이름을 잘못 지었다면 “장군이 거지옷을 입고 있는 격”이라는 것이다.
김도사는 “이름은 당장 가시적인 변화를 가져오지는 않지만, 사주 순리에 맞지 않을 경우 삶 자체의 방향이 틀어질 수 있기 때문에 이름을 짓는 것은 삼고초려하는 마음으로 지어야 한다”며, “이름을 잘못 지을 경우 3재판란을 막을 수 없다는 옛말이 틀린 말이 아니다”라고 거듭 말한다.
이름으로 타고난 사주팔자를 바꿀수는 없지만 나쁜 팔자는 최대한 막고, 좋은 사주팔자는 최대한 살리는 것이 작명의 목적이라고.
김도사에 따르면 이름을 지을 때는 글자(한자)의 뜻과 생년월일의 결합·음양의 순위·발음 등 보통 15가지 정도의 사항들을 파악, 분석해 이들을 조화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작명에서도 역학의 기본서인 주역을 바탕으로 하며, 특히 주역의 8괘를 기본으로 한다.
8괘중 4괘인 건곤감리는 우리나라 태극기에서도 사용되었다. 건괘는 하늘·봄·동쪽·인을 뜻하고 곤괘는 땅·여름·서·의를 뜻하며, 감괘는 달·겨울·북·지를, 리괘는 해·가을·남·예를 나타낸다.
김도사는 “쉽게 말하자면 ‘건’은 남자와 하늘을 뜻하고, ‘곤’은 여자와 땅을 뜻한다고 할 수 있는데, 우주 질서가 ‘건’시대는 끝나고 ‘곤’시대가 왔기 때문에 과거에 비해 여성이 사회적으로 성공하며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고 설명했다.
따라서 과거 여자들에게 이름은 단순히 편의를 위한 것이었지만, 지금은 여자들의 이름도 잘 짓는 것이 중요하다고 덧붙인다. 또한, 최근 한문을 사용하지 않고 한글 이름을 짓는 사람들도 많은데 김도사는 한글이름을 짓더라도 한글발음을 기본으로 이에 맞는 한자도 만들어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김도사는 “주역은 동양사상과 철학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우주의 질서와 순리에 관한 학문은 서양에서도 마찬가지로 존재하고 큰 맥락에서 보면 주역과 같다”고 주장한다. 즉, 아침과 밤같은 시간과 남과 여의 음양을 비롯한 모든 생명과 이치는 우주 질서에 따른 것이며 이는 모든 사상과 철학, 종교의 시발점이고 오늘날 과학의 근간이라는 것이 김도사의 말이다.
김도사의 ‘사람 인생에 있어 매우 중요한 이름’을 붙여주고 받는 이름값은 정해진 바 없이 상황에 따라 받는다고. 보통 15만원에서 개명일 경우 30만원이 이 세계에서 정해진 가격이지만, 사주가 나쁜 사람에게는 이름값을 많이 받을 수가 없다고 털어놓는다. 회사이름은 따져야할 것도 많고, 더 신경도 많이 쓰이기 때문에 사람 이름값보다 훨씬 비싸다.
“80년도에 30만원을 회사 이름값으로 정하고 이름을 지어줬는데, 그 당시 20만원만 주고 간 사람이 10년이 지난 후 찾아와서 이름을 잘 지어줘서 고맙다며 당시 못내고 간 금액을 주고 간 적이 있다”며 “이름이 잘 맞아 회사가 번창할 수 있었다는 걸 경험으로 깨달은 사례”라고 소개했다.
■ 기자의 생년월일 통한 이름으로 본 사주의 에피소드
▲작명의 기본서인 주역의 8괘를 나타내는 그림. (사진=김정민 기자)
이어 “아이에게 이름을 잘 지어줘 고맙다고 나중에 연락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럴 때가 가장 보람있다고 말하는 김도사는 사람들에게 좋은 이름으로 보다 나은 삶을 살 수 있게 도와주는 자신의 직업에 만족감을 표했다.
김도사는 정술년인 올해 피해야 할 이름 글자로는 ‘임’자와 ‘진’자 발음이 들어가지 않도록 지어야 하며, 내년에는 ‘계’자와 ‘사’자, ‘신’자를 피하는 것이 좋다는 중요한 정보도 알려주었다. 이름과 사주만으로도 사람의 많은 것을 파악할 수 있다는 김도사는 “하지만 그럴 경우 많은 사람들이 오히려 자신의 결점을 들킬까 꺼려하기 때문에 밝히지 않는다”고.
고맙게도 김도사는 기자의 이름도 풀이해주었는데, 그 설명이 재미있어 독자들에게도 소개하고자 한다. 생년월일시와 이름 석자로 풀이한 결과 기자는 ‘경정을정’의 사주를 타고났다는 것. 이 사주는 나무로 쇠를 녹혀 그릇을 만드는 사주라 원래는 큰 그릇, 즉 대기(큰그릇)의 운을 타고 났다는 것이 아닌가.
그러나 아쉽게도 이름에 나무 목자가 들어가 있지 않기 때문에 좋은 사주를 충분히 살리지 못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불’을 만나 탈 수 있는 기회가 있기 때문에 나쁜 이름은 아니라고도 덧붙였다.
왕성한 사주로서 건강하고 말주변이 좋고, 기억력이 좋도 예감이 뛰어나다는 기분좋은 소리를 많이 해주시는 덕에 재미있게 들었다.
취재를 목적으로 간 기자도 이 말에 귀가 솔깃해 “그럼 이름을 바꾸면 제 인생이 달라지나요?”라는 질문을 던져봤다. 결론은 당연히 그럴 수 있다는 것. 나무를 태우기 위해서는 산 나무가 아닌 죽은 나무가 필요하며, 기둥 주 자를 넣으면 좋고, 이름 석자의 총획수가 24획이나 32획이어서는 안된다는 매우 중요한 말씀도 던져주었다.
퇴근 후 집에 가서 김도사의 말을 어머니께 전해드렸더니, 당장 개명을 알아보라는 것이다. 하지만 그 후 기자의 개명 사건은 바로 일단락되었다.
이유인즉슨, 기자가 알고 있었던 태어난 시가 잘못된 거라 김도사님께서 친히 말씀해주신 사주와 이름의 궁합은 기자의 것이 아니었던 것. 만일 태어난 시를 제대로 말씀드렸더라면, 지금쯤 개명 신청을 하고 있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참고로 개명을 원하는 사람들을 위해 개명절차와 방법을 간단히 소개한다.